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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회]우리 가족이 고맙다
    정상오 / 2013-12-10 05:08:39
  • 우리 집 닭들이 제법 자랐다. 그제는 앞집 닭과 말로만 듣던 닭싸움을 치열하게 벌였다. TV에서만 보던 닭싸움을 우리 집 마당에서 본 것이다. 앞집 닭은 나이가 2살, 반야네 닭은 이제 10개월이다. 몸집도 작고 나이도 어린 반야네 수탉이 기세등등하게 그리고 대등하게 싸움을 벌였다. 앞집 누나네 닭은 이집 저집 다니면서 싸움을 거는 쌈닭인데 우리 집 닭에게도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반야야 저기 닭싸움한다. 우리 닭이랑 의사 선생님 댁 닭이랑 싸워”

    “응 아빠 닭싸움?”

    “그래 닭싸움 저기 봐봐”

    반야는 닭싸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아빠보고 이리와 보라고 한다.

    “아빠 이리와 봐”

    “반야야 저기 닭싸움 봐야지!”

    “아빠 이리와 보라니까!”

    “반야야 닭싸움 봐봐”

    “잉 이리와 보라고!”

     

    닭싸움을 보자는 아빠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반야 사이에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가족은 요즘 별것을 다가지고 다투며 살고 있다. 아이가 제법 자라면서 반야는 엄마 아빠랑 의견이 충돌할 때가 종종 있다. 닭싸움 같이 치열하지는 않다. 아내와 나, 아내와 반야, 아내와 반야와 나, 나와 반야 이렇게 4개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아내와 단 둘이 살 때는 아내와 나만의 관계였는데 이제는 반야가 커가면서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우리 가족도 인간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우리 집 수탉은 한참을 치열하게 싸우다 앞집 닭의 노련함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덩치와 힘에 밀린 것 같다. 잘 싸웠다. 수탉. 다음에는 잘 할 거야.

     

                                           ▲왼쪽 앞에 하얀 닭이 반야네 수탉, 뒤에서 바라보는 닭이 앞집 누나네 닭이다.
                                  하얀 닭이 뒤로 물러나고 있다. 누나네 닭이 오늘은 이겼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아빠는 어차피 잘 모르잖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찾아오셨다.

    “아버님 반야도 병설유치원에 보내주세요. 아이들이 없어서 반야가 오면 좋겠어요.”

    “선생님 내년에는 모두 몇 명이 다니게 되죠?”

    “두 명이에요. 반야까지 세 명이죠”

    “선생님 죄송해요. 반야는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 계속 다니기로 했어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반야는 유치원에서 동생반 아이들과 윗반 언니 오빠들과 잘 지내고 있다. 아이는 요즘 또래들과 사회적인 규칙을 배우고 있다. 2~3명인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달라고 하니 망설임 없이 그럴 수는 없다고 이야기 했다.

    아이는 지금 다니는 유치원이 좋다고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늘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옷을 입고 새로 온 친구는 어땠는지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 해준다. 난 그런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즐겁다. 아이는 말로 묘사를 해주지만 아빠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면서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꾸를 해준다. 가끔 잘 알아듣지 못할 때는 아이가 아빠에게 핀잔을 준다. “그게 아니고 아빠는 어차피 잘 모르잖아!”

     

    “반야야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건 어떤 거야?” 하면 반야는 “몰라 기억이 안나”

    아이는 대신 친구들 이야기와 동생들, 언니 오빠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늘 지우가 우리 집에 놀러온데, 지우가 빨리 오면 좋겠다.”

    “아빠 지우가 깜찍해!”

    “아빠 오늘 시애가 그러는데 자기는 발레를 배운데”

    “아빠 주원이가 오늘 나보고 똑똑하다고 그랬어”

    “엄마 난 커서 온유반 선생님 될 거야”

    선생님 이야기. 유치원에서 청소한 이야기, 고구마 캔 이야기, 배추와 무를 뽑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지금은 나도 “반야야 유치원에 새로 온 친구 있다며? 어떤 친구야?”, “반야야 오늘 찰리선생님 오시는 날이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아이도 하루 동안 지낸 유치원 생활을 엄마 아빠에게 들려준다. 아이는 무엇을 배우러 유치원에 다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친구들과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에 놀러가고 있다. 아이는 지금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아빠 찬양이는 글자를 벌 써 다 알아”

    “그렇구나. 반야도 날마다 연습하니까 매일 매일 잘 하잖아”

    “찬양이는 책을 보고 읽을 수 있어”

    “그래 책을 읽을 줄 아는구나. 반야도 책 읽을 줄 알잖아”

    “엄마 글자 공부가 어려워”

    “응 반야도 매일 매일 연습하면 괜찮아”

    같은 반 친구가 책을 읽을 줄 아는 것을 보고 아이는 부럽기도 하고, 자기도 글자를 잘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지금 반야네 유치원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 반야는 아이들과 다투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고 담임선생님이 귀띔을 해주었다.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작은 집단에서 규칙과 관계를 충실히 배워가고 있음을 지켜보게 된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음이 즐겁다. 집에서도 엄마와 아빠, 아이가 함께 서로의 역할과 관계를 배워가고 있다. 아내도 나도 아이와의 관계를 배워가고 있다. 가족 안에서, 마을 안에서도 우리의 역할을 배워가고 있다. 재미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이 고맙다.

     

                                           ▲포도껍질 잼을 작은 병에 나누어 담고 있다. “반야야 맛이 어때?” “응, 아빠 맛있다.
                                                빵에 발라먹는 거야?” “응, 맞아 빵에 발라먹자” “그런데 아빠 씨가 너무 많아”
     

    구들에 불을 들이는 계절이다.

     

    지난 가을에 담근 포도효소 항아리에서 포도껍질을 빼고 포도 잼을 만들었다. 포도농장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담근 포도효소 맛이 제법이다. 포도의 당도가 높기 때문에 포도와 설탕의 비율을 일대일 조금 못되게 담그라고 해서 그렇게 담갔는데 잘 되었다. 살짝 포도주 맛도 나고 효소 맛도 난다. 달력에 ‘포도껍질 빼는 날’이라고 적어놓았다가 반야랑 같이 포도껍질을 뺐다. 껍질을 버리기 아까워서 반야랑 같이 ‘포도껍질 잼’을 만들었다. 잼은 맛이 좋은데 포도 씨앗이 많이 씹혀서 먹기에 불편하다.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려고 많이 만들었는데 나 혼자 다 먹어야 할 것 같다.

    이제 눈이 오고 구들에 불을 들이는 계절이다.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반야가 여섯 살이 된다. 굉장한 일이다. 고맙다. 아내와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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