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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회]좋은 아버지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는가
    유숙렬 / 2015-02-18 04:51:41
  • -How Good Dads Can Change the World

     

    여성의 동등권을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남성이 가정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되기 위한 로비활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그로 인한 재정적, 문화적 이익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 비스트(THE DAILY BEAST)에 게재된 개리 바커 박사의 글 “좋은 아버지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는가(How Good Dads Can Change the World)"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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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는 정체성을 여러 가지 축적해왔다. 그는 멕시코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그는 고교중퇴자였으며 갱단의 멤버였고 갱단의 활동으로 무기를 사용해서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주홍글씨처럼 갱단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인터뷰한 시카고 남서쪽의 추운 밤 그의 가장 강력한 정체성의 상징이 그의 무릎 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우리와 인터뷰할 때 19세였던 토니 역시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는 1살짜리 딸이 그가 변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토니는 갱단과 연루되어 살았던 다른 남자들이나 또는 미국에서 범죄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폭력과 멀리 하고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리오데 자네이로의 슬럼가나 아프리카나 세계의 다른 지역의 갈등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중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 이야기와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돌봄(caregiving)은 남자들을 변하게 한다; 미국에서 갱단 폭력연구 중 가장 큰 규모로 실시된 보스톤 지역의 빈민가 1000명의 젊은 청년들을 1950년대부터 시작해 45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아버지가 되는 것이 갱단과 범죄행위로부터 멀어진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과 캐나다, 북구의 중산층에서도 같은 그림이 나온다. 많은 증거들이 남성들이 돌봄을 많이 할수록 여성에 대한 폭력률도 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범죄율 역시 떨어진다. 반면 남성과 아동 그리고 여성의 행복, 건강, 웰빙 지수는 올라간다. 부부는 더 나은 성생활을 보고하고 여성의 수입은 증가한다. 양성간의 전쟁도 감소한다.

     

     

    이제 우리 모두 자녀들을 돌보는데 아버지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대부분 여자의 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값을 치러야 한다. 빈곤의 악순환, 남성에 비한 여성 임금의 저임금화 등 등.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더 많은 남성을 돌봄으로 이끌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몇 개의 스칸디나비안 정부들이 부모 중 누구라도 쓸 수 있는 평균 1년간의 유급 출산 부모휴가를 제공했다. 스웨덴의 부모들은 그 휴가를 아이가 12세가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휴가기간에 부모 중 한 사람 휴가를 택한 사람은 국가의 소셜시큐리티 시스템을 통해 임금의 85%까지 받게 된다.

     

    스웨덴과 주변 이웃 국가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웠다; 부모휴가는 반드시 유급이어야 하며 반드시 아버지를 위한 부분이 남아있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휴가를 가는 아버지를 지지하는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약 70여개 국가들이 아버지를 위한 또는 부모휴가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퀘벡과 몇 개의 유럽국가들 빼고는 아버지를 위한 휴가는 보통 2주 정도일 뿐이고 보통 무급이다. 짧게 말해 부성은 정책 논란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돌봄과 가사노동에서 그들의 몫을 하게 하는 것은 빈곤을 줄이는데 가장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실로 연구와 연구들이 자녀 돌봄에 관여한 아버지들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이롭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돌봄을 공평하게 배분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자라고 더 발전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공평하게 돌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딸들이 자라서 원치 않는 섹스에 휘말리는 비율도 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들과 더 강한 유대감을 보인 아버지는 가정에 수입을 더 많이 가져갔으며 그로 인해 자녀들 또한 가난하게 성장하는 일도 더 적었다. 여성도 출산에서 빠르게 회복했으며 따라서 산후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도 더 적었다. 


    돌봄은 또한 남성들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더 풍부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모든 종류의 의미 있는 관계를 누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직업이 모든 것이 아니란 것을 배우게 되며 여성이 우리와 동등한 파트너란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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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5)

  • hjh1984 [2015-09-15]
  • 우선 ‘멕시코 이민자’ ‘갱단’의 폭력을 문화적 구성물인 성(性, gender) 나아가 흔히 ‘가부장제’라 불리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와 결부시킨 것은 터무니없는 처사임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동안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를 유지한 근간이었으며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이라 규정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교 등 고등 종교 및 사상은 이런 파락호 같은 행태에 어떤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여성과 같은 형태의 ‘돌봄’을 요구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배우자와 자녀에게 베풀어야 했던 것은 폭력이 아니라 ‘돌봄’과 쌍벽을 이루는 ‘부양’이었습니다. 즉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의 핵심은 폭력이 아니라 남녀 각자에게 요구되는 서로 다른 형태의 부자유(不自由)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한 것은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 나아가 이를 지탱한 고등 종교 및 사상에 대한 글쓴이의 편견과 무지(無知)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 hjh1984 [2015-09-15]
  •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남성에게 ‘돌봄’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글쓴이는 마치 ‘돌봄’이 남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유지함에 있어 ‘돌봄’과 ‘부양’은 동전의 양면이며, 대다수 가정에서 남성이 ‘부양’을 1차적으로 책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성이 여성과 대등하게 ‘돌봄’을 책임질 경우 이들은 오늘날 여성가구주와 유사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여성가구주에게 있어 ‘돌봄’이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hjh1984 [2015-09-15]
  • 남녀를 막론하고 ‘부양’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가구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은 오히려 ‘돌봄’에서의 해방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유급 출산 부모휴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휴가 동안에는 가구주도 배우자와 대등한 ‘돌봄’을 떠맡을 수 있을지 모르나, ‘돌봄’은 몇 개월 또는 몇 년 안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이후에는 누가 이를 떠맡아야 할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 경우 가구주에게 배우자와 대등한 ‘돌봄’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합리한 이중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성이 ‘돌봄’에 종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성이 ‘부양’을 앞장서서 책임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돌봄’의 균분이 남성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여성이 ‘부양’을 균분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 hjh1984 [2015-09-15]
  • 이런 점에 비춰보면, 오늘날 ‘돌봄’의 균분이 남성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2013년 10월호 『월간조선』에 게재된 글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지적했듯이, 오늘날 배우자를 먹여 살리는 여성가구주 숫자는 남성가구주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글쓴이는 이를 여성고용 불평등 탓으로 돌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에서 소개한 고소득 전문직 여성들(Gold Miss)의 결혼현황을 통해 입증됐듯이, 여성고용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해서 남성이 ‘부양’의 1차적 책임으로부터 해방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수혜자성, 즉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에서 언급한 ‘보호받을 권리’에 대한 고찰 없이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돌봄’과 쌍벽을 이루는 ‘부양’을 아예 언급하지도 않은 글쓴이는 여성의 ‘보호받을 권리’를 남녀가 동등하게 나눔으로써 남성을 ‘부양’으로부터 해방시킬 생각 자체가 없고 말입니다. 요컨대 글쓴이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남성을 속이려 든 것입니다.
  • hjh1984 [2015-09-15]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내세우는 슬로건입니다. ‘우리는 남성이 가정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되기 위한 로비활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윗글의 주장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적 정의(正義)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을 무조건 똑같이 대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각자의 정당한 몫을 부여할 때 이루어집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히 드러난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상호적인 성격을 외면한 채 어느 한쪽 성의 부담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며 다른 한쪽 성에게 불합리한 이중 부담을 지우고, 심지어 그 이중 부담을 통해 다른 한쪽 성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늘어놓은 글쓴이의 태도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슬로건이 여성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한 구실일 뿐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게 바로 대다수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지난 몇 년 동안 이곳 게시판이 망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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