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투운동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미투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북리뷰전문지 LA Review of Books 는 캘리포니아대학 사라 바네트-바이저 교수의 새 책 ‘Empowered: Popular Feminism and Popular Mysogyny’를 소개하고 그녀의 글을 게재했다.
그 글 “대중적 페미니즘과 미투운동 Popular Feminism: #MeToo”를 소개한다.
- 번역 유숙열
대중적 페미니즘과 미투운동 Popular feminism: #MeToo
2018년의 가장 믿기 어렵게 놀라운 현상은 페미니즘이 인기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돌아보는 어느 곳에든 페미니즘의 표현이 눈에 띈다.
티셔츠에나, 영화에서나, 대중가요의 가사에서나, 인스타그램 게시글이나, 정치인의 취임연설에서나, 어디에서든 페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열정적인 골든글로브 수상연설에서 미국흑인들의 민권운동역사를 미국흑인여성역사로 바꿔놓았다.
그 수상소감을 들으며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침내 페미니즘이 폭넓은 대중에게 지지받고 있다고 느꼈다.
페미니즘의 대중적 인기가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순수하게 기쁜 것만은 아니다.
대중적 페미니즘의 확산이 페미니즘에 대한 사적 대화와 공론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틀림없고
그것은 곧 더 넓은 차원에서 성차별주의를 흔들어놓는 효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17년 10월 하베이 와인슈타인에 대한 다수의 성추행고발이 터졌을 때 그것은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곧 수백 건의 다른 여성들의 폭로와 고발로 이어지는 미투운동으로 폭발했다.
그러나 “me too” 라는 귀절을 맨처음 성희롱 피해자가 다른 성희롱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2006년 흑인 여성활동가 타라나 버크였다.
자신 스스로 성폭력 피해자이며 생존자이기도 한 그녀는 실질적인 미투운동의 창시자이지만
대부분 백인여성들인 유명연예인들에 가려져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타임지는 성희롱을 고발한 여성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s)’이라는 타이틀로 부르며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운동의 창시자인 버크는 표지인물이 아니라 그 안쪽 페이지에서 조그맣게 다뤄졌다.
주류미디어는 새롭고도 중요한 움직인인 미투운동을 대대적으로 주요하게 다뤘다.
그러나 보도는 종종 유명인이 고발당했을 때나 그를 고발하는 여성들에 한정되었다.
미투운동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은 이들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얼마나 흔히 널리 퍼져있는지를 알리는데 도움은 되지만
그 포커스는 유명인이나 연예인에 한정돼 선정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을 현행 미투운동을 어떤 식으로든 비난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2000년대의 미투운동이 페미니스트들 간의 계급과 인종, 섹슈얼리티를 초월해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페미니스트공동체를 형성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미투운동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쉽게 퍼져나간 반면 상업화와 단순화의 위험도 있다.
대중적 페미니즘은 보다 큰 ‘주목(attention)’ 경제의 일부로 이미지나 좋아요, 클릭, 팔로워, 리트윗 등이 성공의 핵심 요소들이다.
대중적 페미니즘은 가장 인기있는 것이 가장 많이 보여지고 따라서 권위를 부여받는 피드백회로에 갇혀있다.
보여지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보여진다는 것이 변화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보여진다는 것은 사회변화를 위한 도구이지 그 목적이 아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은 모든 산업 모든 부문에서 다 일어난다.
특히 어쩌면 더 중요하게 미디어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는 그런 부문에서도 일어난다.
뉴욕타임즈가 디트로이트의 공장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성희롱사건을 보도했을 때
그것은 여타의 유명연예인이 연루된 사건과 견주어 볼 때 속도와 분량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성희롱, 성폭력사건은 그 일터의 위계질서 속에서 여성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연예계와 미디어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시작한 ‘타임스업(Time’s Up initiative)’ 운동은 가사도우미, 농장, 공장노동자 같은 직군을 성희롱과 성폭력의 온상으로 지목하였다.
그 목적은 우리의 주목을 미투운동을 촉발시킨 연예인들로부터 벗어나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피해자가 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미투운동에 대한 보수적인 반격이 예상했던대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막론하고 매우 드세게 불고 있다.
주류언론에 유명 남성이나 여성들이 미투운동을 청교도적이라느니 심지어 마녀사냥이라느니 하면서 공격하고 있다.
유명인에 기대어 미투운동을 더 많이 알리고 확산시키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 노출의 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변화는 아들, 딸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같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동료와 친구들 사이의 사소한 대화로 일어난다.
이런 순간들은 주류언론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사회변화를 위해 필요한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간단하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는가? 어떻게 그것들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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